차를 타고 운전을 하며 가다보면 라디오에서 가끔씩 "우리나라는 물부족 국가이다"라는 말이 흘러나올 때가 있다. 모 방송사와 모 생수 업체가 함께 진행하는 물 관련 캠페인의 일환인거 같은데 저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의아했다.
"우리나라가 물부족 국가라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강수량도 풍부하고, 상하수도 시설 등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고, 무엇보다도 살아오면서 물이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왜 우리나라가 물부족 국가라는 걸까?
그래서 한 번 제대로 팩트체크를 해보려 한다.
우선 우리나라를 물부족 국가로 규정한 곳은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 : 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라는 연구소이다. PAI는 지속 가능한 환경에서 건강하고 적절한 인구의 발전이라는 목표하에 주로 여권 신장, 취약 계층의 인권 보호 등에 포커싱을 맞추어 활동하는 미국의 사설 단체이며 이러한 목표의 일환으로 기후변화, 자원부족 등에 관한 연구를 하며 보고서를 발표한다.
PAI는 1997년 Falkenmark Indicator라는 지표를 활용하여 "Sustaining Water, Easing Scarcity"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이 보고서 내에서 전세계적인 물부족 현황을 평가하였고 UN산하기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각종 정부주도 보고서에서도 그 결과가 인용되었다.
Falkenmark Indicator는 WSI(Water Stress Indicator)라는 지수를 만들어 특정 지역의 상태를 물풍요(No Stress), 물부족(Stress), 물빈곤(Scarcity), 물절대빈곤(Absolute Scarcity)의 네 구간으로 분류하는데, 분류 기준은 1인당 연간 재생산 가능한 수자원의 총량이며 이는 해당 지역의 연간 강수량과 유출량을 고려하여 총 수자원량을 계산하고 그것을 다시 해당 지역의 인구수로 나눈 것이다.
PAI이 연구소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1993년 1인당 물 사용 가능량이 1470㎥로 물부족 국가에 해당하였고, 2000년도에는 1488㎥, 2007년도에는 1,452㎥로 갈수록 물사정이 어려워지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여러 문건을 확인해 보니 Stress 구간을 물부족 국가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물스트레스 국가라고도 표현하며, 둘이 비슷한 개념, 혹은 다른 개념인 것처럼 소개하는 글 들도 많았는데 맥락상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개념이라고 표현하는 경우, 예를 들어 위 표의 기준대로라면 우리는 Stress구간에 포함되고 Scarcity구간은 아니므로 물부족이 아니라 물스트레스 국가라고 말하는 것인데 Stress,Scarcity모두 '부족'이라는 단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둘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인다.
어쨌든, 이 분류법은 국토면적과 인구밀도, 강우량이라는 1차원적인 지표만 사용할 뿐, 수도 보급률, 물 이용효율, 재활용 기술 이나 국가별 개발수준 등이 반영되지 않은 매우 단순한 지표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PAI는 해당 보고서의 내용은 인구증가에 따른 물 부족 현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일뿐, 이 수치를 특정 국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임계값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록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는 있지만 UN산하기구도 아닌 하나의 사설연구소에 불과하며, 연구소의 주된 목표도 환경연구라기 보다는 인권신장과 보호에 있는 PAI의 보고서가 왜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는 물부족국가"라는 인식을 각인시키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첫번째로, 저 보고서 내용이 발표되었던 1990년대 중반, 자극적인 기사 소재를 찾아 헤매는 언론사들에 의하여 확대 재생산 되었고,
둘째, MB정부 시대에 추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이러한 내용이 적극적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다.
즉, 우리나라가 물부족국가라는 "오해"는 기후변화와 환경변화의 위험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주기 위한 어느 사설단체의 엉성한 보고서가 언론과 정부에 의하여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의도로 변질되어 확산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도 2006년 세계물포럼에서 발표한 각국의 물 빈곤지수(WPI : Water Poverty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147개국 가운데 43위로 물 사정이 비교적 양호한 편에 속하며, UN이 2012년 발표한 물부족 국가 지도에 따르면 한국은 물 부족 국가가 아니다!!
강수량도 충분하고 수자원 기반시설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우리나라를 계속해서 물부족 국가라고 외치는 캠페인은 도대체 왜 하는 것일까? 물을 아끼자는 취지에서라면 그냥 물을 아껴쓰자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분명할 것이다. 잘못된 정보로 국민을 호도하는 이러한 행위는 이제 그만 멈추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References
네이버 지식백과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waterforall)
UN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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